“소희야 소미야. 이거 꿈 아니지? 이거 꿈 아니지? 나 혼자 있었으면 기절했을 것 같아.”
장연록씨(66)가 14년 전 세상을 등진 두 딸의 이름을 애닯게 불렀다.
3월 29일 오후, 경찰청이 딸들 죽음과 관련해 진상조사 전담팀을 꾸렸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다.
이른바 ‘단역배우 자매 자살사건’이다.
며칠 전만 해도 진상조사 전담팀은 상상도 못했다.
뉴스에서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배우 장자연씨 관련 사건을 사전조사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딸들 이야기는 없었다.
이철성 경찰청장도 3월 26일 자매사건에 대해 “검토해봐야겠지만 (재수사가) 법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청이 진상조사 전담팀을 꾸리게 된 데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큰 몫을 했다.
해당 사건에 대한 국민청원은 <주간경향>이 3월 3일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청원을 올린 건 장씨가 아니다.
청원이 올라가고 며칠 뒤에서야 장씨는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장씨는 이런 제도가 있는 것도 몰랐다.
이후 자매사건은
SBS
<모닝와이드>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등에서 보도되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방송사들 “가해자, 업무에서 배제하겠다”
청원 인원이 20만명을 넘기면 청와대가 답변을 한다는 이야기에 장씨는 3월 7일 다시 여의도로 나섰다.
여의도에는 가해자들이 속해 있던 기획사가 있다. 장씨는 ‘기획사 반장들 단역배우 강간 성폭력 두 자매 자살’이라고 쓰인 긴 몸 자보를 걸쳤다.
어깨에 걸친 노란색 몸 자보가 무릎까지 내려왔다. 손에는 ‘청와대 청원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작은 피켓을 들었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점심시간이 되자 장씨가 분주해졌다. 장씨는 직접 만들어 인쇄한 유인물을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주로 젊은 여성들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 배우는 “카페에 돈을 내어놨으니 1인시위가 끝나면 커피를 드시라”고 했다. 장씨는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큰딸 소희씨(가명·당시 34세)가 다녔던 대학교도 찾았다. 14년 만이었다.
그동안 일부러 피했던 곳이다. 소희씨를 떠올리게 하는 학생들이 오갔다.
장씨는 “우리 큰애가 여기 다녔어요. 여기서 장학생이었어요”라고 말하며 유인물을 뿌렸다. 몇백 장이 금방 동났다.
며칠 뒤에는 학생들이 장씨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소희씨가 생전에 남긴 기록
장씨는 1인시위를 하고 유인물을 건네면서도 청원에 20만명은커녕 10만명도 함께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딸들의 억울한 사연을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1인시위였다.
하지만 ‘미투(
Me
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계기로 해당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자, 청원 인원은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청원뿐만이 아니다. 지난 14년 동안 장씨가 요구했던 것들이 하나씩 해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장씨는 그동안 가해자 12명의 업무배제와 경찰 수사과정에서의 2차 가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가해자 12명은 여전히 방송계에서 단역배우를 관리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조사 경찰 3명 중 2명도 현직에 있다.
MBC 드라마본부는 가해자 12명 명단을 확인한 다음, 이들을 MBC 자체제작은 물론 외주제작에서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MBC
드라마본부 관계자는 <주간경향>에 “가해자가 몸 담고 있는 기획사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우리는 외주제작이라고 해도 참여시키지 않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SBS 도 정리에 나섰다.
한국노총 전국 IT 사무노련 전국보조출연자노동조합에 따르면 최근까지 가해자 김모씨와 정모씨는 SBS 에서 제작하는 드라마의 진행반장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SBS
관계자는 “이후 빠르게 조치를 취해 지금
SBS
프로그램에 관계된 사람들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전국보조출연자노동조합은 “가해자들이 몸 담고 있었던 기획사 대표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을 오랜 기간 방치했다”며 “수차례 성폭력을 저지른 가해자들이 여전히 이 업계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기획사들이 가해자들을 감싸고 돈다면 이제는 방송사에서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희씨가 생전의 병원의무기록 사본.
담당 형사 찾아갔더니 “고소하겠다”
장씨는 그동안 혼자여서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도 했다. 방송사 제작진과 함께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를 찾아간 것이다.
소희씨가 쓴 메모뭉치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메모뭉치로 책상을 치면서 “이게 사건이 됩니까? 이거 사건 안 된다”고 말했던 조모 형사는 아직 현직에 있다.
장씨는 “지난 14년 동안 얼마나 찾아가서 항의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무서워서 못 갔다. 우리 소미(가명·당시 30세)가 ‘엄마가 언니 억울함을 풀어줘’라고 했는데 나까지 죽으면 애들 억울함은 누가 풀어주고, 내가 애들 얼굴을 어떻게 보겠나”라고 말했다. 조 형사를 만나러 가는 날, 장씨는 딸들의 영정사진도 챙겼다.
장씨에 따르면 조 형사는 해당 사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장씨는 경찰서 한가운데서 소희씨 영정사진을 꺼내 들고 “그럼 이 애도 기억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조 형사는 방송사 제작진과 함께 자신을 찾은 장씨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했다.
그날 밤, 장씨는 술병을 꺼냈다. 장씨는 “조 형사가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면서 뭐라고 하는데, 우리 소희가 그 눈빛에 주눅 들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소희씨에게 “정말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면 가해자의 성기를 그려 오라”고 했던 형사는 현직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희망을 버리기는 이르다.
경찰청 전담팀은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 3명 중 현직에 남아있는 2명에 대해 직접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피해자 측에 대해서는 소희·소미씨가 사망했기 때문에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장씨가 조사를 받게 된다.
남편 역시 딸들이 세상을 등진 뒤, 충격으로 사망했다.
장씨는 “나는 시나리오도 필요없다. 모든 일이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다”며 의지를 보였다.
장씨가 원하는 건 ‘진정한 사과’다. 장씨는 “소희를 강간하고 추행한 건 가해자 12명이다. 그런데 죽인 건 검찰과 경찰이다”라며 “다른 거 필요없고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장씨는 “내 뱃속에서부터 흙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떨어져 산 적이 없는 딸들이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장씨는 지금도 길에서 ‘엄마!’라는 소리가 들리면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본다.
그래도 딸들이 세상을 떠난 뒤, 지난 몇 주가 장씨에게는 가장 덜 외로운 시간이다.
시민들의 힘이 컸다. 장씨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내 억울한 사정을 알아만 줘도 고마웠는데 어느 순간 청원 인원이 20만명을 넘겨서 내가 살아있는 게 맞나 싶다”며 “어디 가서 절이라도 하고 싶다. 잘 싸워서 좋은 선례를 남기겠다”고 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32&aid=0002861242
응원합니다 ㅜㅜ